
해외여행을 다녀온 사람들 중에는 이런 말을 꺼내기 어려워하는 이들이 있다. “여행은 좋았는데, 생각보다 외로웠다.” 여행은 흔히 자유, 설렘, 해방의 상징으로 이야기되지만, 동시에 여행은 우리가 얼마나 혼자 존재할 수 있는 사람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시간이다. 익숙한 언어도, 관계도, 역할도 사라진 공간에서 우리는 더 이상 ‘누군가의 일부’가 아니라 온전히 ‘한 사람’으로 남는다. 이 글은 해외여행 중 찾아오는 외로움을 부정하거나 극복의 대상으로 다루지 않는다. 대신 그 외로움이 왜 발생하는지, 왜 어떤 여행에서는 유독 더 짙어지는지, 그리고 그 감정이 단순한 고립이 아니라 관계와 자아를 다시 정렬하게 만드는 중요한 신호임을 깊고 길게 풀어낸다. 여행의 외로움을 실패로 여기지 않고, 삶의 밀도를 높이는 경험으로 이해하고 싶은 사람을 위한 가장 정직한 기록이다.
왜 여행 중에는 외로움이 더 또렷해질까
일상에서 우리는 생각보다 혼자 있지 않다. 가족, 직장, 친구, 사회적 역할 속에서 늘 누군가와 연결된 상태로 살아간다. 심지어 혼자 집에 있어도, 메시지와 알림, 해야 할 일들이 끊임없이 나를 호출한다. 이 구조 속에서는 외로움이 깊어질 틈이 거의 없다.
하지만 해외여행은 이 연결망을 한꺼번에 끊어낸다. 언어는 즉각적으로 통하지 않고, 관계는 일시적이며, 나를 설명해 주던 직함과 배경은 무력해진다. 이때 여행자는 처음으로 ‘아무 설명도 붙지 않은 나’로 서게 된다.
이 상태에서 느껴지는 외로움은 단순히 사람이 없어서 생기는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관계의 부재라기보다, 정체성의 공백에 가깝다. 누군가의 기대 속에서 정의되지 않는 나, 역할로 보호받지 않는 나와 마주하는 순간, 외로움은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여행의 외로움은 고립이 아니라 노출이다
많은 사람은 여행 중 느끼는 외로움을 고립으로 오해한다. 그래서 그 감정을 빨리 없애려 한다. 사람 많은 장소로 이동하고, 억지로 대화를 만들고, 사진과 메시지로 관계를 채운다.
하지만 여행의 외로움은 고립이라기보다 노출이다.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던 감정과 욕구가 가려짐 없이 드러나는 상태다.
여행 중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은, 평소에도 외로움이 존재했음을 의미한다. 다만 일상에서는 바쁨과 관계로 덮여 있었을 뿐이다. 여행은 그것을 제거하지 않는다. 대신 정직하게 보여준다.
혼자 떠난 여행이 유독 깊은 이유
혼자 떠난 해외여행은 외로움을 증폭시키는 동시에, 가장 밀도 높은 성찰을 가능하게 한다. 동행이 있을 때 우리는 감정을 분산시킨다. 불편함은 대화로 희석되고, 침묵은 어색함으로 채워진다.
하지만 혼자일 때는 다르다. 불편함을 넘길 사람이 없고, 침묵을 채워줄 장치도 없다. 감정은 그대로 남아 나를 향한다. 이 과정은 쉽지 않지만, 매우 정직하다.
그래서 혼자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외로웠지만, 그 시간이 필요했다.” 외로움은 그들에게 벌이 아니라 통과의식이었다.
여행 중 외로움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 순간들
여행 중 외로움은 특정 상황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 하루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을 때 -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했지만, 나눌 사람이 없을 때 - 아프거나 지쳤을 때 - 현지인들 사이에서 스스로가 투명해졌다고 느낄 때
이 순간들은 여행의 실패가 아니다. 오히려 여행이 피상적인 즐거움을 넘어섰다는 신호다. 감정의 깊이가 얕았다면, 외로움도 이 정도로 느껴지지 않는다.
외로움을 피하려 할수록 여행은 얕아진다
여행 중 외로움을 느끼는 순간, 많은 사람은 즉시 그것을 제거하려 한다. 바쁜 일정으로 채우고, 소비로 감정을 덮고,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하지만 외로움을 피할수록 여행은 관광에 머문다. 장소는 많아지지만, 경험은 쌓이지 않는다. 감정은 처리되지 않은 채 다음 일정으로 밀려난다.
외로움을 잠시 견디는 태도는 여행의 결을 바꾼다. 그 시간 동안 여행자는 자신에게 질문하게 된다. “나는 언제 외로운가”, “무엇이 나를 안정시키는가”, “나는 어떤 관계를 원하고 있는가”.
여행의 외로움이 관계를 다시 정의한다
여행에서 느낀 외로움은 귀국 후 인간관계를 다시 보게 만든다. 평소 당연하게 유지하던 관계들 중 일부는 의미 없이 느껴지고, 반대로 몇몇 관계는 더욱 선명해진다.
이는 여행이 사람을 냉정하게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관계의 본질을 다시 보게 했기 때문이다. 외로움을 통과한 사람은 관계를 ‘외로움을 덮기 위한 장치’로 쓰지 않게 된다.
그 결과, 관계의 수는 줄어들 수 있지만, 밀도는 깊어진다. 여행의 외로움은 관계를 파괴하지 않는다. 관계의 질서를 다시 세운다.
여행 이후 외로움이 남아 있다면
여행이 끝난 뒤에도 외로움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여행이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여행이 제대로 작동했기 때문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외로움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외로움을 해석하는 것이다. 그 감정은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 더 깊은 관계인가, 더 넓은 자율성인가, 아니면 나 자신과의 화해인가.
외로움은 언제나 요청의 형태로 나타난다. 문제는 우리가 그 요청을 듣지 않으려 할 때 발생한다.
외로움을 감당할 수 있을 때 여행은 끝난다
여행의 마지막 단계는 외로움이 사라지는 순간이 아니다. 외로움과 함께 있어도 무너지지 않는 상태에 도달하는 순간이다.
그때 여행자는 더 이상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혼자 있는 시간을 실패로 해석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 시간을 자신을 재정렬하는 시간으로 받아들인다.
결론: 여행은 외로움을 없애지 않는다, 외로움을 이해하게 만든다
해외여행은 우리를 외롭지 않게 만들어 주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너는 혼자로 존재할 수 있는가?”
그 질문을 회피하지 않고 끝까지 통과한 사람은, 이전보다 더 단단한 관계를 맺고, 더 정직한 삶을 선택하게 된다.
정말 좋은 여행은 외로움을 제거하지 않는다. 외로움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으로 우리를 바꾼다. 그리고 그 변화야말로, 여행이 삶에 남길 수 있는 가장 깊은 흔적이다.